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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6] '소생'과 '부활'의 차이글 2022. 4. 16. 10:51
부활이라는 말은 오늘날 종교와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사라졌던 조직이나 부서가 다시 생길 때에도 쓰이고, 드라마 제목이나 그룹사운드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을 쓴다고 해서 꼭 실제로 죽었던 이가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경우는 없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유명한 소설의 제목도 부활이지만, 그 소설 역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가 폭벏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과 사건들에 부활이라는 표현이 쓰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대부분 우리가 보고 경험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땅 위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이름은 아담이 지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어 각각 아담에게로 데려갔고,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창 2:19-20). 본 적도 없는 생명체의 이름을 지을 수는 없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 들어보지 않을 일이라면 당연히 그 현상에 대해 무어라 이름 짓거나 분류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신약성경에서는 부활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는 대표적인 용어는 '아나스타시스'이다. 직역하면 '일어남, 일으켜짐'을 뜻하는 이 단어는 신약에서 모두 마흔두 번 쓰이는데, 단 한 번(눅 2:34)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활을 가리킨다. 그에 비해 구약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이 용어 쓰임새만 살펴보아도 구약에서 부활은 중요한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부활을 구약에서는 이리도 발견하기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 구약과 신약의 이러한 큰 차이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로 하여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하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부활 사건이야말로 초대 기독교뿐 아니라, 후대의 모든 인류가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부활 사건을 믿거나 혹은 들어 본 적이 있기에, 사람들은 죽은 것 같은 삶의 회복을 경험할 때 부활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거나 다시 시작할 때 부활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이 신약과 별개의 책이 아니고 계시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면, 구약과 신약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신앙을 증언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 책의 신앙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면 우리는 부활 신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 출처 : 김근주, 『구약으로 읽는 부활 신앙(NEWS & JOY)』, pp.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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