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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3] 니고데모 이야기② '거듭나야 하리라'글 2021. 3. 13. 15:41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요 3: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거듭나다'의 번역은 본래의 의미를 나타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 '거듭나다'는 'born again'으로 번역되었지만, NRSV(New 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는 '위로부터'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위로부터 임한 생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위로부터 우리 가운데 임했습니다. 성령도 위로부터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이런 요한복음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두 번/거듭 태어난다'는 번역은 요한복음의 주제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임해야 하나님 나라를 본다'고 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땅 아래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위'에 생명의 근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태어난다'는 말씀과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요 1:1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창조는 혈통, 육정 혹은 사람의 뜻과는 무관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바꾸는 새로운 탄생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탄생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만 하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니고데모가 가지고 있었던 구원관입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혹은 사람의 뜻으로'가 아니라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바리새인이었지만 그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을 깨닫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니고데모라는 한 사람의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대표하는 모든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무지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육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육은 영과 육 즉 이원론의 세계관에서 가리키는 육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새 시대가 시작되었고 옛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육은 옛 시대에 속한 것이요, 영은 새 시대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와 그가 대표하는 유대인들은 옛 시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는 새 시대의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 역시, 당시 유대인들처럼 옛 시대와 육에 속해 있다면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 출처 : 『하나님의 품 속을 보여 주는 요한복음』, 김경환, 출판사 옛길, pp.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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