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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하나님의 품 속”글 2020. 12. 12. 14:06
4복음서 가운데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철학적 사고와 말씀의 깊이가 훨씬 심층적인 데도 말이죠. 아마도, 그 유명한 요 3:16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문인지도 모르죠. 제가 좋아하는 책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요한복음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 할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남겨주신 교회는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영지주의자들같은 이단들이 교회에 들어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시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의 동료들은 거의 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 할아버지는 다가올 세대를 위해 남기고 싶은 가장 소중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남기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어 그 내용을 두루마리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두루마리에 적었던, 그의 인생에 가장 소중했던 한 가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 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우리가 어떠한 축복을 받고, 어떠한 사람이 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예수님 자체가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제자'는 일곱 개의 표적을 통해, 또 이어지는 고별 메시지를 통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님 한 분만을 전했던 것입니다."
“말씀은 곧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 이 말씀은 요한복음을 잘 설명해 주는 말로, 요한복음이야 말로 하나님의 품 속을 잘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요 1: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표현은 구약 전체의 요약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전체는 하나님을 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보지 못했던 인간 공동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마지막에 기도했습니다. 그가 120년 동안 목말라했던 한 가지는 하나님을 대면하고픈 갈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콜포스(헬. kolpos)인 독생하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의 얼굴을 나타내어 보여 준 것입니다. 직역하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가슴에 들어갔다 나오신 분이시오, 현존하는 아버지의 마음 그 자체로서 참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참 하나님을 완벽히 계시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열면서 요한복음이 어떤 책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가슴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아버지의 가슴을 열어 주신 분이시라면, 요한은 예수님의 가슴에 들어가본 사람으로 예수님의 가슴을 나타내어 '보여 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안에 '본다', '보여준다', '나타내 보여 준다' 등 여러 가지 시작적인 동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까닭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하나님의 품 속을 보여 주는 요한복음』, 김경환, 출판사 옛길, pp. 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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