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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5] 일곱 아들보다 나은 며느리 '룻' 이야기글 2021. 11. 5. 23:21
룻기의 마지막 4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유대 베들레헴 여인들이 룻이 낳은 아들이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가 될 것을 어떻게 확실할 수 있었을까?
그저 소망 사항으로 말한 것인가? 이 아기가 나오미의 노년에 봉양을 할지 안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아이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무슨 보장이 있는가? 여인들이 가진 확신의 근거가 무엇이었을까?
베들레헴 여인들은 확신의 근거를 룻에게서 발견하였다. 룻은 나오미를 사랑한 며느리였기 때문이다. 룻기에서 '사랑하다'의 주어는 룻이 유일하다. 만일 룻의 아들이 이런 어머니의 심성을 닮고 어머니의 삶에서 배운다면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가 되고 노년의 봉양자가 될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시어머니인 나오미에 대한 며느리 룻의 사랑은 룻이 말로나 행동으로 모두 보여준 적이 있었다. 따라서 룻이 낳은 아이도 이러한 성격을 드러내고 기대에 부응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은 나오미를 사랑한 여인이었다. 우리가 룻기 전체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룻이 나오미에게 보인 충성과 헌신은 사랑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베들레헴 여인들이 볼 때에도 룻이 보인 인애는 사랑에서 나온 충성이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는 물론 민족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마저 버리고 나오미를 따른 룻의 인애 행동은 사랑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랑이 무엇인가? 아가서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6-7)."
베들레헴 여인들이 볼 때에 룻은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나은 며느리이다. 그동안 룻과 나오미가 원했던 것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룻은 단지 아들보다 나은 며느리가 아니었다. 룻은 '입곱 아들보다 나은 며느리'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율법을 완성시키는 힘은 '사랑'임을 룻기의 대단원을 마치며 베들레헴 여인들의 입을 통해 선포하고 있다.
☞ 출처 : 『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김지찬,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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